상식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신문 밖의 일, 신문 안의 일을 보며 상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1. 정부의 인사에는 상식이 없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결국 청문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여태껏 숨겨왔고, 또 그토록 부정했던 말도 안 되는 비위들이 그가 공직자로서 쌓아왔던 공든 탑까지 무너뜨리고 말았다.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때리는 인사를 한다. 제 스스로 "인권현장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인권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이 정부의 용단과 악수(惡手)는 짧은 시간의 텀도 두지 않은 채 국민들의 마음 속에 오버랩 됐다. 상식과 몰상식은 멀지만 가까운 관계에 있나보다.

2. 흔히 말하는 유력 언론사의 부장을 만나 밥을 먹는데 그가 한 마디 던진다. "어쩌구 저쩌구 하면 기사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 기자 하나 따라 붙어서 기사 하나 쓰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자 좋은 생각이라며 흔히 말하는 '을'의 무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기자의 동선을 체크해 교통계획을 짠다. 공기 맑고 물 좋은 강원도로 가니 하루쯤 쉬고 오는 게 어떠냐며 기자에게 좋은 숙박시설까지 권한다. 그 기자라는 친구는 갈까, 말까 고민을 한다. '에이 괜찮은데요.' 한 마디에 부랴부랴 1박 2일 강원도 패키지 여행 상품 예약을 취소한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좋을 거 같은데요. 사진 기자도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고.' 또 이 한 마디에 '을'들은 비상이 걸린다. '사진 기자는 또 어디서 재우죠? 그럼 차는 어떻게 할까요? 올라오는 건 비행기 티켓으로 알아봐야 할텐데.'
'을'의 우두머리 중 하나는 지방까지 가서 놀아주느라 수고하신 기자 양반에게 어떻게 성의 표시를 할까 고민하다 결국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머리 쓰기에 지친 게다. 사실 그 방법은 '돈 받고' 기사를 써주는 데 익숙한 집단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신문 안에는 인재를 찾아나선 선구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불과 하루 전 신문 밖에서는 이렇게 몰상식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알던 기자는 없던 일을 만들어내 기사를 만들어내는 직업이었던가. 이래서 행간을 읽으라 했던가. 좁은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야 할만큼 상식과 몰상식은 가까운 거리를 두고 있다. 

3. 사실 이 기자라는 친구가 수치심을 잃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 속에 매몰된 나약한 양심 중 하나였던 것이다. 정부청사 기자실에 간다. 수많은 기자들이 앉아있다. 명함을 건네며 점심약속 없으면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한다. 그래서 고위 공무원만큼 목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간 기자실 아줌마가 예약해준 식당에 모인 기자가 13명이다. 밥을 먹는다. 분명 나와 그들이 같이 밥을 먹었다. 그 분들이 식사를 마칠 때쯤 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한다. 13명 중 그 어느 하나 카운터로 와서 계산을 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몇 번을 네가 사면 한 번쯤 내가 사는 그런 인지상정 따위는 그들의 사전에 없다. 그들에게는 기자실로 찾아와 자기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명함을 건넨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 그 사람들이 돈을 내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없이 부끄럽다. 수습 딱지도 떼지 않았던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홍보실 사람들과 만나며 나는 이 몰상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고급 가죽 허리띠를 받고, 백화점 상품권을 받고 돌려줘야 되나 생각했다가 괜히 바보 취급 받을까 을지로 어느 구두 수선공에게 팔았던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잠자코 기자 생활을 계속했다면 그 식당의 맞은 편에 앉아 나 대신 왔을 누군가가 계산한 밥이며 술을 맛있다고 먹었을 것이다. 소속까지 따질 필요 없이 자리의 문제였나. 상식과 몰상식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래서 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상식과 몰상식의 허공을 가르며 떠 있는 가느다란 외줄 위에 올라타 시종일관 불안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상식'을 키우는 데 더 좋은 게 없다고 말하는, 그러나 실은 몰상식한 집단에 의해 매일 생산되는 그 신문을 하루 종일 손에 쥐고 말이다.

by 靜中動 | 2009/07/20 21:20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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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신유진 at 2009/08/03 15:15
저 기억하시겠어요. ?^^ 전에 학교에서 아나운싱 수업 몇개 같이 들었던 신유진입니다.
mbn에 금감원 출입기자 물어보러 전화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여전히 계신가 봤더니
박경준기자 검색어에 이 블로그가 뜨네요...
어찌 계신지 궁금해서 글 남기고 갑니다.

아! 제가 잠깐 일본을 다녀와서 선배 연락처를 모르네요.
시간되시면 밥한끼해요. 010-8987-9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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