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2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봉하마을에서 소주라도 한잔 먹고 싶다고 썼던 게 1년하고 석달 전이었다. 별 생각없이 썼던 글에는 별 시덥지도 않은 욕을 담은 댓글이 달렸고, 나는 '뭔 개소리야'하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해 그 댓글을 지웠다. 내가 그런 글을 쓴 게 그리 욕 먹을 짓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또 한 번 물으려고 한다.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노무현이 그렇게 욕 먹을 짓을 했냐고 말이다. 억지로 부인을 따돌리고 몰래 부엉이 바위에 올라 몸을 던질만큼 말이다. 노무현에게 죄가 있기는 했다. 뻔뻔하지 못한 죄다. 20년 전, 당시 돈으로 4조원을 해쳐먹은 전경환도 버젓이 살아있다. 4조원도 있는데 9천억과 4천억은 애교라는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 어딘가에 살아있을 전두환과 노태우도 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그렇게 뻔뻔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나라라고 나는 믿었다.

2002년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다. 투표를 못했지만 내심 그가 되길 바랐다. 진짜로 그는 눈물을 흘리더니 대통령이 됐다. 나라님이 되고 나서 잊을만 하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만한 말들을 쏟아냈는데 그 말들을 종합해보자면 "굳이 뻔뻔하지 않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게요."라는 뜻이었다. 노무현과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워먹지도 못한 너 따위가. 못해먹겠다니, 대통령 자리 아무나 하니. 너 때문에 대통령 자리 우습게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왜 대통령이 권위가 되어야 하나. 그것은 우리가 권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무식한 국민들한테 세뇌시키는 우두머리를 원했던가. 하다못해 지금의 청와대 주인도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거늘. 그렇다면 경제가 문제였나. 못 사는 사람들 편에 서서 다 같이 잘 살자고 했던 게 그렇게 큰 죄였나. 행상들, 쎄빠지게 일하는 기사들, 점방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이 대한민국 땅에 누가 대통령으로 와도 재벌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노무현이 재벌 만들어준다고 했나. 그래서 그를 버린 지금, 우리는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는가.

그는 대통령이 된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삶에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사람이다. 마이너도 주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주류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줬다. 그는 우두머리가 스스로 몸을 낮추는 방법도 알았다. 강자에게 강해야 하고, 약자에게 약해야 하는 마음가짐이 그것이다. 지금껏 이 땅에 선 지도자들 중 도덕적으로 떳떳하고 깨끗한 사람이 몇이나 됐나. 힘있고, 강한 사람들이 우습게 아는 수치심. 그 수치심을 견딜 수 없어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의 응원군들에게 자신을 버리라고 했다.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을 고하는 게 있을 수 없다고?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믿음을 줄 수 없어 먼저 인연을 끊자 했던 사람은 있다. 노무현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 진정성도 의심받지 않았다. 죽음으로 그 진정성의 순도를 더했다.

FTA 등으로 우리들의 큰 실망을 산 적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신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나는 도저히 그를 성토할 자신이 없었다. 그 땐 그냥 노무현이 좋아서, 아주 아주 오래 사귄 친구에게 자잘한 싫은 소리 하나라도 아끼는 심정이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비이성적이지 못했던 그 때의 내가 참 고맙기도 하다.

첫 번째 글에서 대통령 말년까지 욕을 먹다가, 퇴임 후 말말년이 되고 나서 고향에 내려가니 인기를 끈다 했던가. 죽고 나서 생의 말년까지 접은 지금 온 나라가 슬퍼하고 있다. 갈대밭에서 썰매를 타는 대통령을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낙향해 농사 짓는 대통령, 물론 앞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손녀를 태운 유모차를 자전거로 끌고 가는 대통령이 또 있을 것인가. 혹자들은 언론으로부터 "깽판 친다"는 소리 듣는 대통령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코웃음 칠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 노무현이 도덕적인지 어쩐지 몰라도, 도덕적 과오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용서를 구하는 대통령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정말 사람 냄새 났던 전 대통령을 잃었다. 그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할까봐 걱정하는 시정잡배들은 이제 코까지 막혀버린 모양이다. 이승을 떠나서도 세상을 가득 채우는 그 사람 냄새를 맡지 못하니 말이다.

by 靜中動 | 2009/05/25 21:18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heypark.egloos.com/tb/495865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판스타 at 2009/05/27 01:00
꼭 그런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을까요?
아쉽네요.
임기동안의 모습에 100% 박수는 못 보내지만,
퇴임 후의 모습은 모범이 될 만큼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모의 유엔은 떨어졌습니다 ;;
형이 잘 도와주셔서 후회없게 준비는 잘 했습니다
오비와이비때 얼굴 뵙고 말씀들릴려고 했는데 ㅋ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봅愛 at 2009/05/30 16:53
이제, 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아.
Commented by 靜中動 at 2009/06/02 17:20
세운아.
너는 항상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글에 대한 댓글 조금 달고 네 얘기 하더라.
모의유엔 까짓거 떨어질 수도 있지.
그것보다 더 재밌는 일이 쎘다.

봅.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Commented by 송현석 at 2009/06/03 18:52
들러서, 글 읽다 간다....
자기 얘기 할때 글에 대한 댓글 조금 달고 하면 안되는건가..^^ v(태클은 아님)

음..나같은 무심한 소시민은 정치적으로 진보든 보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지만, 그걸 떠나서 어쨌든 노무현 참 안타깝다...
Commented by 김성준 at 2009/06/25 22:30
울엄마가 한말인데, 산사람은 살아야지.

여학생속에 있어도, 여전히 글은 잘 쓰는구나
Commented by 靜中動 at 2009/06/30 08:52
쏭형.
형은 댓글 조금 달고 해도 돼. ㅋ
정치적으로 진보나 보수에 속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성준아. 고맙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