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포가 빨라졌다

감기는 눈을 계속 억지로 떠가며 지켜본 대표팀 경기는 밤잠을 설친 보람을 찾게 해주었다.
새해부터 대표팀 차출 거부 문제로 분위기가 어수선했기에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90분간 경기를 지켜보며 내가 보았던 희망은 '빨라진 경기박자'와 '세대교체의 시작'이었다.

기존에 우리 대표팀과 강팀 간에 가장 두드러졌던 차이는 경기의 템포였다.
그것은 K리그 중계와 EPL 중계를 비교해서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축구팬들의 '프리미어 리그를 보다가 K리그를 보면 답답해서 못 보겠다'는 등의 푸념은 바로 이런 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우리 팀의 경기 운영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먼저 공수 간격이 예전보다 좁아진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김상식이 계속해서 포백 간의 라인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그리고 전체적인 수비라인을 끌어올려서
전진패스가 불가능해 볼이 다시 뒤로 나오더라도 재빨리 공격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호와 김남일의 전체적인 볼컨트롤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수비가 공을 잡았을 때 패스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던 것은 칭찬할 만하다.
박지성이 활발히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밑을 잘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월드컵 때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조재진의 머리를 겨냥해서 롱패스를 시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중앙 미드필더 세 명이 가운데에서 활발하게 뛰어주고, 이천수와 설기현 역시 열심히 움직이며 패스가 원활이 돌았다.
(불안했던 수비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수비에서 볼을 가지고 있을 때 포백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볼을 간수하는 과정이 매우 원활했을 뿐더러,
양 측면 수비수, 특히 오범석이 폭넓게 종으로 움직여주며 공격 활로까지 터주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패스의 방향이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생기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대로 게임의 템포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축구도 2002년의 영광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새 얼굴들이 대표팀의 얼굴을 메워줘야 하는데,
이번 경기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여준 김용대나 골대를 맞춘 박지성의 헤딩슛을 만들어준 오범석 등이 돋보였다.
후반 교체투입된 김정우와 김치우, 김두현 등도 그리스의 막판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며 승리에 힘을 보탰다.
올해 아시안컵은 이르겠지만 2010 월드컵에서는 이들 세대가 스쿼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오범석, 김치우, 김두현, 김정우, 김동진, 이강진, 오장은 등등.
올림픽, 아시안게임 대표팀 등의 주축이었던 이 선수들이 박지성, 이천수, 설기현 등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아시안컵과 다음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오범석의 선전이 어제 돋보였는데, 워낙 센스있게 힘 안들이고 볼을 차는 선수라 앞으로 큰 부상만 없다면
전성기 기량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송종국이나 투박한 조원희보다는 출전횟수가 많을 것 같다.

문제는 오범석을 포함한 수비진의 조직력이다.
적잖이 상대에게 내줬던 찬스에서 수비에 가담했던 선수들이 한 곳에 몰리면서
어처구니 없게 떨어지는 볼을 자유롭게 슈팅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를테면 수비 상황에서 헤딩 경합에 두 명 이상이 가담할 필요 없을 뿐더러,
헤딩 경합이 벌어졌을 때 나머지 선수들은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여 위험지역에서의 슈팅 찬스를 주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의 역할 분담이 무척 아쉬웠다
김용대의 선방이 없었다면 분명 승리는 어려웠다. 선방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허용한 찬스가 많았다는 뜻이다.

어쨌든 크레이븐 커티지에서 벌어진 경기답게 꽤나 프리미어 리그처럼 박진감 있는 경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발전의 여지가 있어야 기대도 되고 재미가 있는 것이지,
그래서 수비가 불안해도 난 묵묵히 기대하고 응원하련다.
(이천수 선수, 힘들겠지만 난 그대의 건방지면서 자신 있는 모습이 더 보기 좋답니다.)

by 靜中動 | 2007/02/07 23:23 | sports inside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heypark.egloos.com/tb/308008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