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01일
새해
3년 전 새해가 생각난다.
다른 미군 부대와는 달리 사람 수가 많이 적었던 캠프 이글에서는,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나팔소리가 들리면
매일 카투사 두 명과 미군 두 명이 새벽에 깃발을 올리고 저녁에 깃발을 내려야 했다.
카투사 인사과에서는 월초가 되면 그 로스터를 짜서 보여주는데,
물론 초미의 관심사는 휴일에 누가 플래그 듀티에 걸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크리스마스나 New Year같은 경우 얘네들은 나흘을 주구장창 놀아버리기 때문에,
황금연휴의 절반을 날려먹지 않게 해달라고 누구나 바라곤 했다.
배려심이 깊었던 선임들 덕분에 크리스마스 때는 여기서 빠져있었고,
2004년 첫 날, 깃발을 올리게 되었다.
새벽 5시 반쯤 일어나 눈을 뜨고 막사 밖으로 나가보니
'여기는 강원도 횡성이요.' 하듯이 칼바람이 쌩쌩 불어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고, 눈도 많이 쌓여 있었다.
임진섭 병장과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대대 건물로 향하는 길에 너무 추웠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나팔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올라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아 이게 2004년의 시작이구나. 참으로 군인다운 한 해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돌아보면 내 인생에 있었던 새로운 한 해의 시작 중에 가장 특별한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3년 뒤,
학교 앞 횟집에서 지빈이와 남화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빈이는 26, 나는 25, 남화는 24을 맞이하며 으레 형식적인 새해 인사를 주고 받았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뭔가 가슴 떨리게 하는 기대감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대신에 우리는 좀 더 간절하게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빈이는 사법고시에 붙고, 남화는 행정고시에 붙고, 나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하는 꿈들은
어쩌면 기대라기 보다는 이 복작거리는 세상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자신들이 바라는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3년 전에는 기대며, 꿈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스물다섯이니 부지런히 나의 미래를 준비하여 나의 모습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자.
景俊이니 돋보이지는 않더라도 꼭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자.
장남이니 동생 잘 챙기며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효도하자.
친구이고, 선배며 후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자.
길은 쉬운 곳에 있으니 공연히 어려운 생각으로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아직은 희망과 열정이 살아있으니 웃으면서 살자.
다른 미군 부대와는 달리 사람 수가 많이 적었던 캠프 이글에서는,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나팔소리가 들리면
매일 카투사 두 명과 미군 두 명이 새벽에 깃발을 올리고 저녁에 깃발을 내려야 했다.
카투사 인사과에서는 월초가 되면 그 로스터를 짜서 보여주는데,
물론 초미의 관심사는 휴일에 누가 플래그 듀티에 걸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크리스마스나 New Year같은 경우 얘네들은 나흘을 주구장창 놀아버리기 때문에,
황금연휴의 절반을 날려먹지 않게 해달라고 누구나 바라곤 했다.
배려심이 깊었던 선임들 덕분에 크리스마스 때는 여기서 빠져있었고,
2004년 첫 날, 깃발을 올리게 되었다.
새벽 5시 반쯤 일어나 눈을 뜨고 막사 밖으로 나가보니
'여기는 강원도 횡성이요.' 하듯이 칼바람이 쌩쌩 불어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고, 눈도 많이 쌓여 있었다.
임진섭 병장과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대대 건물로 향하는 길에 너무 추웠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나팔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올라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아 이게 2004년의 시작이구나. 참으로 군인다운 한 해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돌아보면 내 인생에 있었던 새로운 한 해의 시작 중에 가장 특별한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3년 뒤,
학교 앞 횟집에서 지빈이와 남화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빈이는 26, 나는 25, 남화는 24을 맞이하며 으레 형식적인 새해 인사를 주고 받았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뭔가 가슴 떨리게 하는 기대감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대신에 우리는 좀 더 간절하게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빈이는 사법고시에 붙고, 남화는 행정고시에 붙고, 나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하는 꿈들은
어쩌면 기대라기 보다는 이 복작거리는 세상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자신들이 바라는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3년 전에는 기대며, 꿈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스물다섯이니 부지런히 나의 미래를 준비하여 나의 모습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자.
景俊이니 돋보이지는 않더라도 꼭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자.
장남이니 동생 잘 챙기며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효도하자.
친구이고, 선배며 후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자.
길은 쉬운 곳에 있으니 공연히 어려운 생각으로 나를 힘들게 하지 말고,
아직은 희망과 열정이 살아있으니 웃으면서 살자.
# by | 2007/01/01 11:54 | monologue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나라목수님.
횡성 톨게이트 진출 후 왼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에 보이는 건 캠프 롱이에요.
제가 있던 캠프이글은 거기서 15분 정도 더 산골로 들어가야 나오죠.
공군부대 안에 있어서 밖에서는 잘 몰라요 ㅎㅎ